늙어버린 아들 못알아보는 어머니의 30년 세월
[ 고국 방문기 ② ]
2009년 07월 31일 (금) 08:49:12 송경식 전승한방병원
 드디어 도착한 한국은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졌고, 공항에 많은 사림들을 보는 것 자체가 한국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하였다. 비행기의 연착으로 마중 나오기로 되어 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일단 공항버스로 목적지까지 가기로 하고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하였다. 

손꼽아 기다리시는 어머님을 먼저 보기 위해서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어가며 집을 향하였다. 마침내 어머님을 만나고 보니 많이 연로하셨다. 어머님은 집사람과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시는데, 정작 아들인 나는 못 알아보셨다. “너무 늙어서…” 라고 하시면서. 참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튿날 내가 좋아하는 꼬막으로 아침을 먹으며 한국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다음 계획은 처가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역시 집사람과 장모님과 장인어른과의 만남은 눈물바다가 되었으니…. 내가 너무 무심하였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부끄러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양가의 방문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여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지하철을 타보고, 버스도 타보고, 거리도 걸어 다녀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었다. 그 꿈을 가족과 함께 이루게 된 것이다. 한국의 모든 움직임이 우리에게는 낭만으로 느껴졌으며, 너무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나의 생각의 시간은 삼십년 전 한국을 떠나올 때에 멈추어져 있는데, 지금 내가 보는 한국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니 하수도에서 나오는 악취가 너무 거슬렸다.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지하철은 소문 그대로 나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고, 버스는 그 옛날 동전을 내고 타던 것이 아니라 버스 카드를 이용해야 했다. 거리를 행보하는 기쁨을 뒤로 하고 기거하는 곳으로 돌아왔다. 

미국과 특히 다른 점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보도에 사람들 전용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차가 막 다니고, 파킹도 하고, 자동차의 무분별한 질주는 삼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광경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이런 말을 하였다. “아빠 한국에서는 운전할 때에 운전자가 상대 운전자를 컨트롤하면서 운전을 하네요.” 상대방 자동차를 막고 끼어 들어가는 모습에서 운전자가 상대 운전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 운전자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것으로 보였는가 보다.

건널목을 건널 때도 보행자들이 차가 다가와도 먼저 몸으로 막고 건너는 광경은 참 위험천만하게 보였다.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식구들에게는 아주 불안한 광경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의 정이 그리웠던 우리 아이들에게는 한국이 천국으로 느껴졌으며,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까지 한다. 수많은 인파들이 길을 활보하는 모습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한국의 환경이 그전에는 솔직히 싫었는데 지금은 너무 좋게 느껴졌다. 이민생활 동안 사람의 정이 그리웠던 것 같다. 그 와중에서 불편했던 점은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흡연을 하고 있어서 간접흡연을 면치 못했다는 점이다. 술 문화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아 보였다. 대낮에도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술과 담배에 관대한 한국문화가 아이들에게 잘못 전달이 될까 염려가 되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기간 동안 시간이 너무 아쉬워서 잠을 잘 못들 정도였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 아이들과 동네 구멍가게도 가보고, 동네 길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문득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아까 지나던 사람에게 인사를 하니까 나를 계속 째려보고 가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혼동이 돼요.” 하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끼리라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데, 한국 사회는 눈이 마주치면 얼굴을 돌리거나 오히려 험상궂은 얼굴로 시비하는 것처럼 쳐다본다. 이런 것들은 좀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물론 친절한 사람들은 무척 친절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은 아주 감명 깊었다. 지하철에서 서로 몸이 좀 부딪쳐도 불쾌하게 반응을 하지 않는 한국인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인만의 가족공동체의식으로 서로 이해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미국인들이 조금만 몸이 부딪쳐도 “익스큐즈 미(excuse me)”라고 사과하는 행동과는 너무 달라보였다. 어떻게 보면, 익스큐즈 미에서 나타나는 사과의 표현은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경고 메시지인 것인데, 한국인의 가족공동체의식의 환경은 아주 좋게 보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지하철을 타는데 뒤에서 젊은 학생들이 타면서 영어로 상스러운 표현을 하는 것을 듣고 나니 기분이 많이 안 좋았다. 아마도 유학생들이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 들을 것이라고 서로 영어로 상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듣자니 참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나에게는 낭만으로 느껴졌으나 아직은 생소한 지하철의 이용방법이 힘들었다. 환승을 하는 역에 대해서 혼동이 되어 역에 있는 가게주인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저 선생님, 제가 이곳을 가려고 하는데 어떤 곳에서 타야 하나요?” 하고 물었더니, 나의 얼굴을 멀끔히 쳐다보더니 투박하게 “몰라요!” 라고 대답을 한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뭐 실수를 했나 하고 생각을 해보았으나 이해가 안 되었다. 아마도 너무 상식적인 것을 물어서 그랬나? 생각을 하며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며 드디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 했다.


송경식 전승한방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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